- 자기현전의 흔적과 기술(記述)의 예지적 열림 사이 -작가 김의식의 2011년 이후 작업을 중심으로 홍경한(미술평론가) 1. 삶과 죽음에 맞서는 인간. 처음엔 그저 땅을 깊게 파고 시신을 안치하거나 관에 수없이 많은 못질을 해 망자와 거리를 두려했던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불안해 다시 흙을 덮고 돌로 만든 ‘비’를 세워 죽은 이가 다시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완전하다 믿었다. 이때 생각해낸 방법이 예술가의 손을 빌려 생전, 생후라는 주제 아래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각인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주술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뛰어 넘으려 하거나 죽은 자가 살아 나와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려 했으며 그때 태어난 것이 바로 이미지였다. 즉, 인간의 삶은 근원적(根源的)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에 대한 궁극의 표상으로 피어낸 것이 다름 아닌 이미지였던 셈이다. 태초부터 이미지는 재현의 계단을 완고히 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의미를 지녔다. 인류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을수록 사후와의 고리로써의 이미지를 완성하려했다. 그리고 기원전 3만 년 전부터 다듬기 시작한 ‘무덤’은 하나의 이미지 집합소였다. 일례로 이집트 고왕국의 지하 분묘와 미케네의 왕릉, 에트루리아의 지하 묘지, 로마 묘지, 메로벵 왕조의 지하묘지를 비롯해 중세와 르네상스 묘소에는 다양한 부장품들이 함께 묻혔고 커다란 눈이 새겨진 석관, 황금의 장례표지, 생전의 일상을 담은 프레스코화, 사자의 신상, 로마 묘지에서 발견된 저부조, 해골이 든 유골함, 청동와상, 현대의 비석(종류와 모양도 다양한) 등등을 만들어 '껴묻거리' 했다. 덕분에 훗날 망자는 영원히 무덤에 머물렀을지라도 이미지는 무덤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는데, 그것들 하나하나는 전부 죽음에 대한 이미지이자 미술사적 가치들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미지로써의 무덤은 지금 우리 앞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비록 형식은 다르지만 오늘날에도 그 죽음의 안식처를 텃밭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주술적으로 풀어내는 이미지스트들이 있다. 주제 사라마구, 뵈클린과 같은 문학계는 물론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영화, 부재와 죽음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작업으로 주목받은 소피칼, 헤르만 니치, 마크 퀸 등의 미술작가들이 그 예이다. 이 중엔 우리가 잘 보지 못하거나 읽지 못하는 것을 대리하며 다른 세계와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도 있다. 공간을 하나의 무덤인 냥 거칠게 치환하고, 그 내부에 뼈를 안치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목도 지점에 서 있는 작가 김의식의 작업도 그 한 사례다.   2. 작가 김의식의 작업은 흡사 자연사 박물관의 그것과 닮았다. 지난 8월 개최된 김종영미술상 수상 개인전 당시 선보인 전시장의 분위기 역시 동일 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거대한 고래 뼈가 축 늘어선 공간은 어찌 보면 이미지의 무덤이었고, 각각의 뼈들은 죽음을 기억하는 대리된 언어였다. 생명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하얀 뼈는 그의 말마따나 “자연적 지배를 받는 생물학적인 존재의 인간 본질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지만, 죽음 자체를 인식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기호의 의미도 두드러졌다. 그만큼 알 수 없는 공감도 컸다. 허나 김의식이 이 전시에서만 해당 작업을 선보인 건 아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뼈들이 군집으로 늘어선 작품 <소리 없이 140501>(2014)을 비롯해, 각각의 구성체가 아니지만 일체화 된 외뿔을 하고선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동물의 두상을 빚은 작품 <두개골>(2011), 부조처럼 벽면에 걸려 공간을 응시하는 작품 <척추 협부 결손>(2011) 등, 수년 동안 유사한 맥락의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그 모든 것들은 공간과 ‘뼈’를 거푸집 삼아 운용되는 것이었으며 시각적으로 명료한 묘출을 텃밭으로 뼈에 각인된 시공의 의미까지 덧댄 설치작업이었다. 현재의 작업에서 많은 이들이 갖는 궁금증은 과연 “이 박물관 같은 곳에 똬리 튼 ‘뼈’들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이다. 그것은 앞서도 언급했듯 간략하게 말해 ‘묘지’이자 ‘죽음의 이미지’의 전치다. 전시장은 하나의 무덤이며 그 곳에 놓인 뼈들은 ‘죽음’을 상기시키는 표상이면서 동시에 죽음과 삶을 잇는 경의의 표식인 셈이다. 이를 조금 더 세세히 분석하면, 그의 작금 작업은 공간과 맞물림으로써 역사적으로 박물관이 없던 시절의 박물관을 인용케 하며, 원시적 조형언어의 집합체였던 표지와 다름 아님을 유도하는 상징체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어떤 공간에 ‘뼈’를 들여놓는다는 건, 단순히 죽음을 기리는 의미를 넘어 지금도 유효한 실제를 대신하는 기호로서의 역할을 지닌다. 그렇다고 그의 작업이 오로지 ‘뼈’라는 지지대에만 의지하는 건 아니다. 흥미롭게도 그보단 훨씬 철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의식의 철학적 배경엔 두 가지 특징이 이입되어 있다. 우선 그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건 ‘뼈’ 위에 적혀 있는 판독 불가능한 글자와 그 글자를 적어나가는 ‘행위’이다. 이 이해 불가능한 텍스트의 나열은 어느 하나로 규정되어지지 않은 채, 연이은 언어의 의미작용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생성하는 분동이 된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작가의 ‘적는 행위’와 맞물림으로써 가치가 구분되는데, 이때 되레 의미는 지연되고 층위가 다른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해석된다. 3. 두 번째 특징은 철학적 사고를 형성하는 프레임에 있다. 이 틀은 곧 문자의 본질(통념)과 의미의 단절(거부) 및 연속성(그 두 가지를 뒷받침하는 행위)을 병렬적으로 담보한다. 실제로 김의식의 작업은 후기 구조주의자 자크 데리다(Derrida)의 디페랑스(Differance, 차연(差延))라는 조어를 끌어와 접목시키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dffe'rance’는 ‘차이(差異)’와 ‘연기(遲期)’의 합성어이다. 데리다는 기존 대문자로 표기된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의문 차원에서 소문자의 가치 체계적 문제제기로 ‘디페랑스’라는, 발음은 같지만 문자는 엄연히 다른 프랑스어 ‘diffe'rence’의 어미 ‘-ence’를 ‘-ance’로 바꾸어 ‘dffe'rance’라고 했다. 여기엔 ‘다르다(differ)’와 ‘연기하다(defer)’라는 의미인 ‘differer(디페레)’가 포함되어 있다. 데리다가 ‘차이’를 뜻하는 ‘diffe'rence’를 굳이 ‘dffe'rance’로 한 이유는 ‘diffe'rence’가 내재하고 있는 ‘고정관념’과 ‘통념’을 거부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김의식의 작업과 연계하면, 김의식이 “뼈 위에 이해 불가능한 글을 쓰는 행위”는 데리다가 ‘difference’의 ‘e’를 ‘differance’의 ‘a’로 이동시킨 것에서처럼 어떤 텍스트가 지닌 의미란 궁극적으로 결정(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작용의 연쇄 속에서 하나의 대체 가능한 언어해석으로부터 다른 해석으로 지연된다는 디컨스트럭션(deconstruction)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에 있다. 그것은 일종의 의미와 현전의 근원에서 시각의 규정과 진행 중인 행위의 탈규정의 모순적 역설(쓰면서 옹립하고 쓰면서 지워내는)이자, 본질적으론 본래 ‘문자’가 지닌 의미를 이탈함으로써 위계의 역전을 꾀하는 개념을 끌어 온다. 이는 사실상 죽음과 맞닿아 있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시원으로서의 뼈, 망각의 재물로써의 뼈, 작가 자신과 우리 모두를 관통하는 실체로써의 뼈이기도 한 셈이다. 이는 그 스스로 “소멸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부재와 현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버린다”거나 “신작에서는 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림으로써 거의 드로잉에 가까운 형태를 띠게 된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즉, 근원의 말소인 차연인 것이다. 물론 김의식의 ‘dffe'rance’는 넓게 보아 공간화, 시간화의 문제이며, 기존 사유체계(각인된 죽음)에 대한 절대성에 대한 해체(죽음의 이반)를 수반하고, 또한 동적인 사유의 운동성(기록함으로써 지움을 뜻하며, 이는 행위 아래 지속적으로 구동됨을 가리킨다.)을 담지 하는 차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결정체는 죽음이요, 보이는 것이 아닌 보여주는 것, 행위를 통한 시간의 층위 쌓기에 방점이 있다. 하지만 소위 철학과 미학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관람객이라면 김의식의 작업에서 짐짓 드러나는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긴 어렵다. 그것이 비록 난해한 체감을 동반하진 않는 것일지언정, 그의 작품들이 ‘해체적 글쓰기’, ‘의미 전복의 이미지’를 온전히 발견하긴 어렵다. 그럴 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비교적 명료한 의미(원기억체)의 거푸집인 ‘뼈’를 주시하거나 어느 층위에서든 불완전하게 수용되는 ‘의미’의 가능성을 읽으려 하는 것, 아니면 미끄러지는 과정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의식의 작업은 바로 그 지점으로 인해 유의미한 것이 사실이다. 4. 김의식의 작업에서 뼈는 물질이고 쓰는 행위는 영혼의 분사이다. 뼈는 죽음의 직시성을 지시하지만 쓰는 행위는 그 직시성 위에서 영원함을 뜻한다. 때문에 이 둘을 잇는 작품은 그 자체로 ‘기록’되지만 본질이 쉽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이는 미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죽음을 보이게 하는 것이고 보여서는 안 되기에 미끄러뜨리는 것과 맞닿는다. 그러면서 기억의 환류와 저장을 해체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선을 넘나들었던 오래 전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죽음에 관해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해 삶에 관해 성찰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그의 죽음에 대한 의식과 기표는 스펙터클하지 않다. 대신 김의식의 죽음은 죽음의 순간 보다는 시간에 대한 사유로 점증되며, 어떤 노골적인 장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비가시적인 죽음을 잠재적이고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환유적 확장의 힘을 가진다. 또한 죽음의 응시를 통해 스스로의 죽음과 마주하도록 하지만 이는 다시 알 수 없는 곳으로 증발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죽음을 성찰하는 이미지는 현대 사회의 죽음이 은폐된 일상 속에서 나의 죽음, 나아가 타자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해 들여다보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작가는 이러한 속성을 공간과 각기 다른 장르, 형식을 통해 무한적 의미를 생성해내는 영원한 ‘기표놀이’로 확장시킨다. 이는 구체적으로 예술의 모태가 된 기억과 그 기억을 거푸집 삼은 뼈를 통한 기의의 발현으로 나아가 내적 의미의 은둔을 유발하고, 가시적이며 고정적인 의미의 형상들을 해체시켜 개개인에게 ‘미끄러져’ 부유하고 있음을 입체로 표상한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상 상대적이고 이분법적 구조주의를 이탈할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한’ ‘디페랑스’를 창조해낸다. 이처럼 김의식이 생성해내고 있는 이미지들은 우리의 고정적 학습과 관념에 의해 하나의 공간과 시간을 거슬러 차이 되며 존재하는 것임에도 이미 정의되어진 것의 연장이라는 느낌이 커, 어떤 지시어와 만나 다시 다른 의미로 낙점되는 현상의 강도 등은 비결정의 속성을 유지한 채 시각으로 대체된다. 한편 작가 스스로 더욱 연구하고 학습해야할 필요성이 읽히지만 어쨌든 그의 작업은 지금까지의 단초만으로도 새로운 관계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샅샅이 횡단하며 새로운 차이를 발생시키는 ‘차연’, 파지적 흔적과 예지적 열림 속에서 끝없이 전치되고 해체되며 재기술되는 사유의 출발점을 제시한다. 이는 작업에 대한 작가의 열정만큼이나 우리가 바라보고 이해하는 죽음의 의미 또한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인식과 문자의 틈이 개폐를 거듭하며 시대에 따라 생성, 변화, 소멸 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정한다. 물론 애초 그 시작은 죽음과 맞닥뜨린 경험에 근거하며, 이것이 오늘날 작업의 밑동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죽음은 본원적으로 영감을 불어넣는 천재이자 철학의 무사게트(Musaget)와 같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설득력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