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성覺醒’-모순적 글쓰기의 여정

박춘호(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작가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작가는 무엇인가 표현해서 그것으로 인정받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표현을 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인가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감성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솔직함일 것이다. 솔직함이 결여된 감성적 표현은 달콤할 수 있겠으나 진한 감동과 여운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많은 경험을 해 본다는 것은 크나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제작된 작품들은 다수의 관객들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묘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김의식의 작업에서 이런 흡입력이 느껴진다.

 김의식의 작업을 처음 보는 관객은 의아해 할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와 마주치게 되는 것은 마치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공룡의 뼈 표본과 유사한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보면 그 뼈 위에 뭔지 모르지만 깨알만한 크기의 글씨 같은 것이 적혀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읽으려한다. 그러나 그 글은 읽을 수가 없다. 문장같이 줄을 맞춰 쓰여 있기는 하나 읽을 수가 없는 기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의식과 인터뷰를 하며 필자는 대학 4학년 때를 전후 한 그의 경험들을 듣게 되었다. 교통사고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던 일,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 주시던 할아버지의 죽음, 애인과의 이별 등. 소위 말하는 삼재가 낀 것인지 그가 극복하기에 너무나 힘든 일이 단기간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 결과 그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졸업전시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문불출하였다. 전시가 임박해서 어떤 작품을 출품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그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자신의 작업으로 보여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일단 일기를 쓰기로 하였다. 하루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아닌 잊기 위한 몸부림의 일기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졸업전시 작품제목은 『Memory-Room』이었다.
 『Memory-Room』은 머리 하나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창을 통해 관객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 되어 있다. 그 안은 실재 방과 같이 보인다. 거기에는 작가 자신이 사용하는 책상, 침대와 베개, 그리고 여행용 가방과 신발 등이 있다. 방 안에서 책상은 사유를 하고 침대는 휴식을 취하는 특정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용 가방과 신발은 휴식 혹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위에 깨알 같은 글을 발가벗은 상태로 썼다. 적나라하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글은 읽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의도했던 바는 나중에 다시 읽으려 해도 읽히지 않게 해서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기억들을 지워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잊기 위해 글을 쓰는 모순적 상황이다. 왜냐하면 원래 글쓰기의 목적은 기록해서 기억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블랙라이트와 형광등의 반복되는 점멸은 방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생활과 수면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조그만 창문 너머의 단순한 풍경은 많은 상징적 의미들로 넘쳐나고 있다.
 김의식은 졸업 후 지금까지 4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잠시 개인전 제목을 살펴보자. 첫 번째 개인전 제목은 『The Nature』, 두 번째는 『Kunstkammer』, 세 번째는 『Physis』였으며, 네 번째 전시 제목은 『뼈를 적다』였다. 『Memory-Room』 이후 4번의 전시가 진행되며 달라진 점은 자신이 구체적으로 사용하는 사물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닌 뼈 위에 글을 쓴다는 것이다. 이런 전환의 과정을 보여준 것이 첫 번째 개인전이었다. 제목도 ‘자연’으로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physis는 nature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1, 3회 개인전의 제목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전시제목 『쿤스트캄머 Kunstkammer』는 영어로 ‘Cabinet of curiosities’ 즉, ‘호기심의 방’이다. 르네상스 시대 큰 부를 축적한 신흥 귀족들은 진귀한 물품 수집에 열광하였다. 이들에게는 수집한 물건을 진열하여 남들에게 과시할 공간이 필요했고 이 공간이 바로 ‘쿤스트캄머’이며, 오늘날의 박물관, 미술관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자연사박물관이 지금도 있는 것과 같이 자연과 쿤스트캄머는 사라짐과 보존사이에서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The Nature』와 『Kunstkammer』는 명사로 인식과 관련되었다면, 가장 최근의 제목인 『뼈를 적다.』는 작가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 글이 아닌 뼈를 적고 있다.
 이번 전시제목은 ‘Natura’라고 한다. 라틴어 Natura는 ‘본성’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니까 앞서 살펴본 The Nature의 의미는 자연보다는 본성으로 해석되어야 적절할 것 같다. 그는 본성을 파악하고자 동물의 뼈를 만들었다. “뼈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뼈는 한 생명체가 존재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 생명체를 보지 못하였다면 현존하는 뼈로는 그 존재의 본성을 파악할 수 없다. 과학적 지식을 통해 생태학적 특성 정도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본성이라는 것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다. 특이한 점은 그가 만든 뼈는 최소 두 가지 종의 뼈를 결합시킨 것이다. 그러니 전시장에 있던 뼈들은 실재 있었던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실존하지도 않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 생명체의 본성을 살핀다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본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김의식은 이번 전시에 거대한 밍크고래 지느러미뼈를 전시한다. 지느러미뼈에 역시 알 수 없는 글을 빼곡히 썼다. 그는 필자에게 밍크고래에 대해 조금은 놀라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밍크고래가 해양 동물 중 인간과 DNA MAP이 가장 유사한 생명체임이 최근 연구결과로 밝혀졌다고 한다. 예전에 고래가 포유류라 진화의 증거로 고래의 지느러미뼈는 사람 손과 똑같은 구조라고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들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인간과 고래는 아주 먼 옛날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전에는 가상의 생명체를 만들다가 이제는 현존하는 생명체의 뼈를 만들었다. 왜 인간의 손에 해당하는 고래의 지느러미를 만들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2011년 개인전에 보여줬던 비디오 작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작품제목은 “Hommage de Stanley Kubrick”인데, 스탠리 큐브릭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앞부분을 편집한 비디오 작업이다. 김의식은 유명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시작하는 장면부터 초기인류가 최초로 동물의 대퇴 뼈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즉 그 뼈를 허공으로 던져 하늘을 배경으로 뼈가 클로즈업된 장면까지를 편집 제작하였다. 그는 극중 대퇴 뼈를 3D이미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삽입하여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그가 시원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Memory-Room』에서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것, 영원히 부재하게 된 할아버지, 애인과의 헤어짐을 통해 고통을 겪으며 그는 그 기억들을 잊고자 하였다. 그는 당시 그의 작업을 잊어버리기 위한 의식적 행위였다고 한다. 그러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헤어짐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그는 어떤 사물에 읽을 수 없는 글을 쓰고 있다. 이 읽을 수 없는 글들은 마치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의 웅얼거림을 시각화 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사물이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들에서 뼈로 전환된 것은 그가 사유의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한다. 더 이상 잊어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잊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하여 점차 보편적인 문제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으며, 묘한 흡입력이 배가 되고 있다.